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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단의 목소리에 부쳐

솔빛시인 2022. 11. 21. 14:26



나이 먹을수록 내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고맙고 귀하다.
요나단의 목소리를 읽으며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두서없는 얘기겠지만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고 싶다.

난 미션스쿨인 중학교를 다녔다. 우리 집은 종교가 없었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라 간 거라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옆 고등학교까지 같은 재단이라, 추수감사절 행사하고 한달에 한번 기독교가 과학적으로도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영화 보고.
그때도 아이들은 반은 자고 반은 딴짓하고 나처럼 좀 보는 애는 거의 없었다.
보면서도 이게 사실일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매주 ‘종교’ 시간이 있었다. 그땐 애들이 거의 다 자는 시간이었다.
정년퇴임을 앞둔 선생이 성경에 나온 얘기를 해주었지만 자습을 더 많이 했고 나도 기억나는 건 거의 없다.
그래도 추수감사절 행사 준비하는 건 재밌었다. 반 대항 합창대회도 있었고,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은 재밌는 분장을 하고 연극도 했다.
댄스 대회도 하고. 그래도 축제 같았다. 다들 즐거워 보였으니까.
종합 고등학교 가서는 인문계라고 상과는 축제를 참여해도 우리는 아예 막아서 문예부 시화전 한 게 전부라
중학교 추수감사절 축제가 나에겐 유일한 축제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때 부터 성인까지 심지어 결혼 전까지도 그렇게 여러 사람이 나에게 전도했다.
한 두 번 호기심에 가본 적도 있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하던 친구 아버지는 개척 교회 목사라,
친구가 끈질기게 권유해서 가봤는데, 모두 다 손 벌려 환영하고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공부도 가르쳐 준다고 하고, 악기도 배울 수 있다는데
난 그게 불편했다. 사춘기 반항심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날 언제 봤다고 이렇게 환대해주는 걸까? 의심했다.

그렇게 난 지금도 무교로 살고 있다. 문학으로 생각하는 성경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도 잘 되진 않았다.
<요나단의 목소리>를 읽으며 내 편견이 깨진 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다는 점이다.

물론 대충은 알고 있었다. 내가 봤던 신자들도 다 달랐으니.
하지만 나에게 전도했던 친구나 선생도 나의 처지를 얘기하며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고 하기에 난 불편했다.
집이 가난해서 부모가 힘들어서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나에게 그건 음악과 책이었다. 그거면 충분했고, 물론 친구도 있었지만
돈 아껴 또는 몰래 모은 돈으로 테이프, 책 사서 듣고 보던 시기가 아니었다면 그 시기를 지나갈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 책을 보며 그게 그들이 믿는 방식이었구나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을 하면 가슴이 저리고 눈물이 나고 이름만 봐도 반가운 건 다들 비슷할테니.

화자가 바뀌긴 하지만, 주로 의영의 시점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 작품이 말해준 이야기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기독교, 청소년, 퀴어 라는 단어들로 예상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섬세하게 매만진 이야기는 내 마음도 안아주었다.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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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가 죽었다 살아난 사고에서 예전 목소리는 잃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건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결말이었다.
난 내 목소리를 가다듬은 적이 있었나 내 자신을 찾고 있나 돌아본다.
이런 고민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거다. 그때마다 요나단의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한다.
때로 힘들고 아플지라도 내 목소리로 살겠다고. 물론 그 목소리를 내기까지 힘들었던 시기도 잊지 않겠다고.

거의 다 연락이 끊겼지만 다들 건강히 잘 지내길. 책을 덮고 오랜만에 옛날 친구들을 떠올리고 건강을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