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기 쓰고 싶은 날

솔빛시인 2021. 12. 1. 22:34



아이를 낳고 평일 저녁에는 일정을 거의 잡지 않는다. 남편은 낮밤 가리지 않고 일이 있고 아이를 혼자 둘 수 없기에. 김 모 가수 공연이나 사랑하는 작가님들 북토크가 아니면. 그런데 12월 1일 마음산책 북클럽 행성어 서점 낭독회를 한다니. #우리가빛의속도로갈수있다면 을 가제본 부터 잘 읽고 최근작까지 다 사서 읽었는데 작가님을 직접 뵐 기회가 없었다. 줌이나 온라인으로 뵌 게 전부.

한 달 전부터 남편에게 얘기했다. 나 이건 가야 한다. 최근에 우울한 일도 있었다.노화가 시작됐다는 걸 피부로 느낀 일이었다. 사실 노화는 예전부터 진행 중이었겠지. 운동도 잘 안 했는데 이제와 후회해서 무엇하리. 하지만 뭔가 눈으로 보이고 몸으로 느끼는 건 다르더라. 이건 빠른 시일에 해결될 일은 아니라. 스트레스도 덜 받아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남편이 맘이 좀 걸렸을 거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오늘까지도 안심 못하던 일정이 갈 수 있게 되고 난 신나서 예정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동네를 벗어나 어딘가를 가면 꼭 근처 서점을 들르는데 오늘은 #땡스북스 다. 합정 가면 꼭 들려도 일년에 몇 번 못 가는 곳. 항상 큐레이션이 좋고 맘에 들어서 오늘도 신나서 구경하다 재영 책수선 작가님이 쓴 #어느책수선가의기록 을 보고 #행성어서점 이 생각났다. 미지의 책을 수선하는 것과 언어를 모르는 책을 팔고 사는 것. 그 점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책들도 보고 고민했지만 이 책이 맘에 들어 작가님 선물까지 두 권, 그리고 #고마워책방 사인본 도 구입했다. (참 작가님, 드린 책 사인본이에요.^^)

그냥 책 선물을 못 하는 옛날 사람이라 카드도 사서 두서없이 편지도 썼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작가님 사랑해요나 쓸 걸 그랬다 싶지만, 아무튼 좋아한다는 응원한다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마음산책 북클럽 모임이 코로나 때문에 자주 열리지도 못했지만 그 동안 가려다 못 가기도 해서 나에겐 2년 전 이후 두번째 모임이었다. 새로 지은 마음산책 사옥 지하 홀에서 작가님 인사와 책 소개, 회원들 낭독 질의 응답이 한 시간 정도 진행됐다. 난 미리 낭독 신청도 못했는데, 못 오신 분 대신 읽겠다고 자진해서 읽었고. 얼굴은 뻘개졌지만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원래 좋아하는 건 용감하게 한다. 오늘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인터뷰 보면서 느꼈지만 작가님은 책과 말이 일치하는 사람이구나 또 한 번 생각했고. 가고자 하는 길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픽사 애니메이션 얘기 할 때 공감했는데, 목표를 향하지만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라고. 꼭 목표를 달성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 요즘 힘들었던 나에게도 위로가 된 말이었다.

끝나고 사인 받을 때 책을 드렸다. 사실 작가에게 책을 선물하는 건 위험한 일인데. 십몇년 정도 경험으로 작가에게 책을 드릴 때는 주로 신간으로 드린다. 내 나름의 방법이다. 작가님이 진짜 좋아해주셔서 기뻤다. 너무 들떠서 작가님께 하고 싶은 말도 다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으리라.

집으로 오는 길에 신이 나서 집에 가면 꼭 일기를 써야지 생각했다. 꼭 작가 북토크 처음 간 거 마냥 기분 좋았던 하루다. 작가님이 건강하게 오래 오래 마음껏 써주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