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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솔빛시인 2022. 3. 27. 21:09

#도서협찬 #세상에없는나의기억들
저자 #리베카솔닛
출판사 #창비
2022년 3월 8일 발행
원서 2020년 Recollections of My Nonexistence

오늘 아침 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는 내내 울었다. 눈물이 많은 나도 잠도 다 못 깬 아침에  눈물이 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난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이 책은 리베카 솔닛의 첫 회고록이지만 서문에서 그는 회고록이자 회고록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집단적인 맥락 속에서 담았다고. 작가가 젊었을 적 오래 살았던 집을 시작으로, 동네 흑인 사람들, 게이 친구, 미국 원주민 문제를 조사하며 겪은 일, 젠더 문제, 작가로 자리 잡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지만, 이 책은 제목대로 유명 작가가 되기 전 내용이 반 이상이다. 제목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은 리베카 솔닛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자신의 언어를 찾으러 부단히 노력하고 자리잡으려고 했던 기억들을 말한다. 그래서 세상엔 없었다. 작가 표현대로 지워진 ‘비존재’ 시절이다.  

그런 시절을 겪고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성공을 거두고 리베카 솔닛은 지금까지 꾸준히 써왔고, 우리나라에도 많이 번역됐다. 나도 많이 읽진 못했지만 이 책이 다섯 번째로 읽는 리베카 솔닛 책이였으니까. 처음에 나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알게 돼서 속 시원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멀고도 가까운> 때 그 편견이 깨졌고 이번 책은 작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또 한 번 작가의 시선과 문장, 내용 모든 것에 감탄했다. 꼭 마른 화분이 물을 쭉 빨아들이듯 솔닛의 모든 문장에 내 눈과 머리와 마음 온 몸으로 흡수됐다.

포스트잇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좋은 내용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 책이 한 권 더 있어, 나눔해야지 하고 붙였던 포스트잇을 중반엔 후회할 정도로. 이럴 줄 알았으면 내 책에 다 연필로 쓰고 붙이고 했을텐데. 그가 어떻게 자신의 언어를 찾았고, 또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작가의 태도와 지워진 여성의 존재를 어떻게 알릴지, 그와 더불어 인종, 환경 문제에도 발벗고 나서는 이야기가 아름다움 문장으로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요즘 나의 고민이기도 한 언어를 찾는 문제가 와 닿았다. 글을 쓰는데는 자신감보다 신념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는 문장도 절절히 공감했다. 글을 쓰고 책은 내는 것 보다 나의 단어와 문장을 찾는 게 먼저라고 요즘 생각하기 때문에 아래 문장을 읽으며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자신이 겪은 혼란스럽고 유동적인 경험 중 일부만을 선별하여 종이 위에 모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대리석 덩어리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다. 거친 강물에서 겨우 몇줌의 부유물을 건져내는 일이다. 그 찌꺼기를 어떻게 잘 늘어놓아볼 수는 있겠지만, 강 전체를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 “(164)

이 문장 말고도 마음에 남을 내용은 많고, 마지막 챕터에서 눈물을 쏟았던 문장은 이 책의 주제라 여기서는 비밀로 한다. 읽은 분과 같이 꼭 나누고 싶다.

리베카 솔닛을 좋아하는 독자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누구라도 이 책에서 마음에 담을 문장을 발견하고 공감하고 나처럼 울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도 우리에게 이 감정을 나누고 우리가 이런 시간을 겪었고 힘들었지만 우린 살아낼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낭독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이라도 같이 2주 정도 한 챕터씩 따로 읽고 나서 모여서 마음에 담은 문장들을 낭독하고 싶다. 그때 마지막 챕터 이야기를 나눈다면 또 눈물이 날지 몰라도 그땐 웃으며 이 책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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