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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솔빛시인 2022. 2. 20. 02:37

온라인 모임이 있어 책을 읽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도 봤다.

1929년에 발표된 소설로,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여성을 중심으로 한 중편소설이다. 제목의 ‘패싱’은 흑인이 흑인이 아닌 척 숨기는 걸 말한다. 200페이지가 안되는 소설이지만 되풀이해서 읽게 되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주인공 아이린이 클레어에게 온 편지를 받고 2년 전에 오랜만에 만난 그 때를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둘이 만나고 마지막 결말까지 물 샐틈 없이 흘러간다. 모임은 참여했지만 정리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두서없이 쓴다.

아이린의 심리묘사가 주로 나오고 클레어는 아이린의 눈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그에 대해 짐작할 수 있는 건 클레어의 대사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 친구지만 다른 선택을 했고 아이린은 클레어가 자신을 침범한다고 느끼고 남편과의 관계도 의심한다.

아이린은 내적으로 갈등하지만 겉으론 티를 안 내고 클레어는 대사로 자신의 심정을 다 말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린은 클레어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선택한거니 비밀과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클레어는 초반에 아이린이 반기진 않았지만 나중에 점점 불안을 느낀다는 걸 짐작하지 못한다. 아마, 자신의 행복에 빠져 관심도 없었거나 아이린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열린 결말로 썼다고 본다. 아이린과 클레어가 달라보여도 둘다 평생 자신이 편히 있을 곳을 갈망했지만 그건 불가능했고, 그래서 비극적으로 끝났다. 작가가 혼혈이고, 생애를 미루어볼 때, 경험이 바탕이 됐을 거다.

100년을 살아남는 고전을 보면, 그 시대와 국경을 넘어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 평가가 달라지는 고전도 있다.) 이 책은 나에게도 ‘패싱’한 적 없냐고 물어보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난 지금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지명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했다. 그 지명은 나에게 멍에같은 거여서 얘기를 하면 일부는 그곳이 어디고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거의 없다. 살면서 아닌 척 한 적은 이외에도 많을 거다. 아주 작은 걸로는 그 사람이 싫어도 아닌 척 하고, 여러 가면을 쓰면서 살아간다. 나는 몇 가지 가면을 갖고 있나 생각도 해봤는데 죽을 때까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도 좋았다. 각색도 잘했고, 흑백영화인데, 난 패싱이 흑인이 아닌 척이라는 것에 집중해서 봤기 때문에 배우들의 피부 색도 컬러보다 잘 안 보이지만 아이린이 좀 더 진하고 클레어가 더 밝은 피부라는 건 느낄 수 있어서 그걸로 이해했다. 책에서도 보면 아이린도 패싱을 하지만 자신이 흑인이라고 굳이 밝히지 않는거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이탈리아 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으로 착각한다고. 그냥 그걸 냅두는 거라고.
감독이 책에 없는 장면이나 아니면 있는 대사 중 중요한 건 확실히 넣는 게 좋았다.

이 시대에 여성 작가 소설들이 고딕 소설도 많고 주로 히스테릭한 여성이 나온다. 가부장제와 인종차별등 시대를 생각하면 작가들이 이렇게 소설을 쓰며 그 시대의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느꼈다.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100년이 지나도 그런 이야기에 몰입이 되고 공감한다는 건 지금 시대가 바뀌긴 해도 불안해 하는 여성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소설 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여러 장르로 변주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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