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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키워드로 보는 애프터 양

솔빛시인 2022. 6. 24. 23:06



영화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스포가 싫다면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다 하루 3초의 영상만 남길 수 있는 양의 모습에 착안하여
몇 가지 단어로 애프터 양에 대해 써봤습니다. 1. 기억

기억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지금 생각나는 영화만 해도 한 번 보고 충격 받고 다시 플레이를 눌렀던 #메멘토 신촌 아트레온 첫 줄에서 양쪽 커플 사이에 앉아 보다가 마지막엔 눈물까지 흘렸던 #이터널선샤인 등등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이지만 <애프터 양>은 또 다르게 좋았던 영화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된다. 중요한 사건을 기억 못하기도 하고 다르게 기억해서 서로 말을 맞추다 싸우는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 양은 프로그래밍된 테크노 로봇이고 하루의 3초만 영상으로 장치에 저장되어 있다. 양의 주인이었던 부부는 양의 기억 장치를 보고 그 영상을 힌트로 그때 그 일을 떠올린다. 재미있는 건 양의 기억과 부부의 기억은 좀 다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그게 맞고 틀리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양은 진짜 기억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만 인간인 부부는 그 기억 장치에서 양이 떠나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다. 양을 스스럼없이 대한 건 동생인 미카와 친밀했던 애이다 정도로 보인다. 부부는 양과 대화할 때 인간으로 연민과 거리감을 어느 정도는 두었던 걸로 보이지만 양은 그렇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이기도 하지만 그가 갖고 있던 3초 영상 들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인간의 기억과 3초 영상으로 남아있는 양의 기억은 형태가 다를 뿐 다 소중했다. 양의 기억을 보며 소중한 건 아주 가까운 데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느껴서 슬프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가족의 얼굴, 하늘, 나무, 바람 평소에도 눈에 담고 살아야지 생각했다.

2.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 평생을 살아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 영화에서 정체성은 중요한 이야기다. 애프터 양은 SF지만 낯설지 않다. 특히 이민자, 경계에서 고민했던 아시아인이라면 피부로 와닿을 설정이다. 부부는 백인, 흑인, 입양아는 중국인, 로봇 양도 중국인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옷도 중국식, 남자는 마시는 차를 만들어서 팔고, 음식도 라멘, 식당도 중국 식당 같다. 한국계 미국인인 감독 인터뷰를 보면 아시아인으로서 느끼는 걸 담았다고 했다. 미카와 양의 대화에도 나온다. 미카의 뿌리를 궁금해하자 양은 접목한 나무를 보여 준다. 다른 나무지만 만나서 하나의 나무가 되었다고. 난 이민자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경계인, 디아스포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 영화에 끌렸다. 나를 낳아준 부모를 알지만 내 정체성이 부모에서만 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을 봐도, 그가 중국인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중국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미카는 낳은 부모는 중국인이겠지만 그래서 중국인인걸까. 감독이 정확히 답을 내리지 않지만 미카는 중국인, 미국인, 아니면 꼭 규정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건 의미가 있다. 양도 친구인 복제인간 애이다 도 인간이 정한 정체성이지만 그들은 그게 중요할까.
제이크가 애이다에게 양이 인간이 되고 싶었냐고 물어보는 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다. 그들은 그들일 뿐. 그들을 맘대로 정의한 건 인간이니까. 그건 바꿔 말하면 아시아인도 서양에서 규정된 거고, 어떤 것도 그렇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걸 이 영화는 말한다.

3. 영화

애프터 양은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3초 영상을 남기는 양은 영화의 카메라로 보인다. 영화도 시나리오와 편집으로 선택된 장면으로 이어진다. 우린 모든 걸 볼 수 없으니까 편집된 걸로 짐작하고 상상하고 부풀리고 감동받고 슬퍼하고 웃는다. 감독은 비디오 에세이스트였던 실력을 살려 양의 기억을 만들었다. 시간은 짧아도 어떤 걸 선택하고 버릴지 쉬운 게 아닌데 우주에 빛나는 별처럼 표현된 양의 기억을 보고 감탄했다. 우리는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인간의 기억의 한계를 넘어 편집된 기억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싶어서.

4.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처음엔 놀랐다. 아니 이 음악이 여기서 왜 나오지?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슈슈의모든것 은 영화보고 며칠을 앓았다. 그게 벌써 거의 20년이 다 되가니 지금 다시 보면 그 감흥은 아니겠지만 잊을 수 없는 영화라, Glide를 듣는데 영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감독이 그 영화 팬이라는 걸 알았고, 이제 이 노래는 애프터 양의 음악이 되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처음엔 릴리 슈슈를 먼저 봐서 다행이다 생각했고, 양은 왜 좋아했을까로 이어졌는데 에이다가 좋아하니 자연스레 좋아했을 거라고 가사가 양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도 이유이지 않았을까.

5. 애도

며칠 전 남편과 시어머니 얘기를 했다. 남편이 전역하고 몇 달 안돼 돌아가셨는데, 그리울 때 없냐 이젠 괜찮아졌냐 물어봤더니. 남편은 단호하게 괜찮아지는 건 없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맘이 아팠다. 그래, 괜찮아질 수 없지.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고. 남편은 20년 넘게 알아오며 그때가 둘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제주도, 난 한창 취업 준비를 하느라 옆에서 바로 위로해주지 못했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꺼진 양. 미카는 오빠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신의 뿌리를 알려주고 모든 걸 함께 했기에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영화 말미 밤중에 일어나 오빠 방에 들어가 미카가 한 말에 눈물이 났다. 이게 애도구나. 미카가 오빠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구나. 부부도 그렇다. 박물관에 전시하는 건 싫지만 양의 기억을 연구해야 한다고 너무 소중하다고 받아들인다. 부부의 집은 통유리로 되어 있는데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있는 구조라 그게 꼭 양이 그들을 보고 있는 시선 같았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떠난 소중한 인연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말하는 귀한 영화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봤으면 좋겠다. 어두운 장면도 많아 집중해서 봐야 한다. 두번 세번 봐도 좋다. 다시 보면 또 다르게 좋을 영화다. 앞으로 코고나다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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