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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스포 주의)

솔빛시인 2022. 7. 4. 22:23

* 스포가 있으니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



헤어질 결심

얘기할 때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보는 ~ 이라는 설명이 붙는 감독이 몇 명 있는데 박찬욱 감독도 그 중 하나다. 초기작 빼고, 복수는 나의 것, 리틀 드러머 걸 (이건 원작 먼저 본다고 그러다 아직도 못 봄.;;) 을 제외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다 봤다. 그 중 스토커는 꽤 좋아해서 블루레이도 샀다.

이번 영화는 제작 소식이 들렸을 때 부터 기대했는데, 두 배우 때문이었다. 다 좋아하는 배우고, 탕웨이가 나온 만추는 가을 되면 생각나고 극장에서도 여러번 본 영화였기 때문에 두 사람과 감독의 만남이 너무 기대됐다. 게다가 칸에서 좋은 소식도 들리고 기대치가 최고조로 올랐는데 영화제 이후 거의 한 달만에 개봉이라 궁금했지만 또 기대하면 실망하기에 자제하며 개봉날 조조로 지인과 함께 봤다.

처음 봤을 때는 1부는 좀 지루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15세 관람가 라는데도 못 믿고.) 잔혹한 이야기를 상상하며 내내 긴장하면서 봤다. 같이 본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경쓰이긴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영화는 혼자서 오롯이 보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기에. 그런데 2부에서 서래가 산에서 한 대사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에 진짜 헉 소리가 실제로 날 만큼 몰입해 그 다음부터 엔딩까지 눈물이 고인채 영화를 봤다. 영화 끝나고 혼자 있고 싶었다. 이 감정이 무엇인가 곱씹고 싶었지만 일행이 있으니 그럴 순 없고, 주말에 언택트 톡 예매해둔 게 있었는데 그걸 꼭 가야했다고 결심했다.

아이 키우며 주말에 영화관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시간이 난 것만으로 감사하지만 상황을 살피며 사람 많은 곳을 뚫고 자리에 앉기까지 의심도 했다. 두 번 보면 좋을까? 우선 혼자서 집중해서 지루하게 느꼈던 지점을 다시 보고 첫번째는 해준의 시선으로 봤다면, 서래의 마음에 집중해서 보고 싶었고, 다시 듣고 싶은 대사가 많아 대사도 확인하고 싶었다.

두 번 보니 더 좋았다. 이 영화 스토리는 사실 단순해서 처음 볼 때는 그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점이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알고 보니, 디테일과 미장센, 대사, 배우 연기에 집중하니 영화가 훨씬 더 마음에 들어왔다.

1. 헤어질 결심은 ‘사랑한다’고 대사로 말하지 않고 ‘사랑’을 말하는 영화다.

그래서 대사가 중요하다. 영화에서 섹스 장면이 딱 한 장면 나오는데 전혀 긴장감이 안 느껴진다. 그 장면과 대비되는 건 해준과 서래의 취조실 장면 등이다. 해준이 ‘패턴을 풀고 싶다’는 말은 서래의 패턴을 풀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서래는 고양이에게 진심을 얘기한다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갖고 싶다’고. 허리띠를 풀었다 다시 총을 넣고, 서로의 시선이 반지 낀 손에 엇갈리고, 절에서 데이트도 하고. (한쪽 어깨가 다 젖은 해준!) 하지만 두 사람은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 서래는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급급했고. (녹음본을 지우고 사진을 태우고.. ) 1부 마지막 장면에서도 자신의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폰으로 해준의 말을 녹음한다. 그걸 불리하면 써 먹으려고. 하지만 뜻하지 않은 말이 나온다.

붕괴. 무너지고 깨어짐.

해준은 자신이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폰을 깊은 바다에 던지라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해준은 그렇게 떠났지만 서래의 사랑은 그때 시작되었고 시작되자마자 헤어질 결심을 한다.

2부는 이포에서 해준이 정신과 상담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영화 내내 불면증에 시달린다. 유일하게 잘 잤던 건 서래와 숨이 섞이던 그 순간이었다. 서래는 무언가 결심을 하고 이포로 오고, 의도대로 둘은 다시 마주한다. 이때부터 그 동안 우리가 봐왔던 영화의 틀이 깨지기 시작한다. 범죄 영화, 고전 영화 등에서 등장하는 팜므파탈이었다면 1부가 영화의 마지막이었겠지만 영화는 그것을 비틀고 모든 것이 대비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고경표 배우와 대비되는 김신영 배우의 형사 연수.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부산과 일어나지 않는 이포 (그래서 애플워치도 운동화도 없다) 두번째 남편의 죽음, 처음 볼 때도 짐작은 했다. 아, 이건 서래가 범인이 아니겠구나. 1부에서 의심하지 않았지만 2부는 의심이 짙어지고, 해준은 서래의 마음을 알지 못해 방황한다.

결국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은 서래. 그만이 온전히 다 알고 있다. 그는 산에 올라 자신의 할아버지와 어머니 유골을 뿌려달라고 했을 때 부터 결심했다.

해준의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을 결심을. 누구는 독하다고, 또는 절절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결심.

감독은 굉장히 친절하게 대사로 보여준다. 하지만 해준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들은 결국 엇갈린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알았던 서래. 자신이 말하고도 몰랐던 해준.

엔딩에서 서래가 판 구덩이 속에 회오리가 두 번째 볼 때 눈에 더 들어오는데 슬펐다. 감독은 ‘안개’를 엔딩에 깔았다가 너무 슬퍼서 뺐다는데 그래도 슬픈 건 내가 눈물이 많아서일까. 아마 해준은 평생을 저 파도에서 헤매고 있지 않을까.

2. 언어

헤어질 결심에서 언어는 중요하다. 서래는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고 통역기는 필수다. 우리는 처음엔 조금 어색한 한국어를 듣는다. 사극으로 말을 배워 문어체 같은 말을 쓴다. 그땐 신비하고 알고 싶은 캐릭터라면 2부에서 중국어를 하는 서래는 생기있다. 우리는 통역기를 통해 번역된 내용을 들을 수 밖에 없고 해준도 마찬가지다. 이건 애플의 광고가 아닐까 만큼 애플 기기가 다채롭게 나오는데, 최신 기기로 예전에 우체국으로 편지 보내는 감성을 느끼게 하는 점에 놀랐다. 대사도 다 너무 좋았지만 이 영화에서 통역기 번역을 기다리는 시간은 중요하고 그 점이 해준과 서래의 엇갈린 감정 같아 영화를 더 애틋하게 만든다.  

기기를 표현하는 방식도 좋았다. 이것도 지연된 시간과 연관되는데, 문자를 보내는 장면도 시점숏을 써서 보여주거나. 해준이 새벽에 문자를 보내는 장면에서 여러번 썼다 지웠다 타이밍을 놓치는 모습도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자문하게 된다. 꼭 말로 하는 것만이 언어는 아닐 거다. 문자도, 애플 워치에 녹음하는 음성도 결국 단서가 되는 기기의 기능도. (138층) 모든 것이 섬세하게 영화를 이루는 게 좋았다.

대사는 좋은 대사가 너무 많다. ‘마침내’, 사랑의 다른 단어가 된 ‘붕괴’. 피식 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까지. 각본집은 나오면 꼭 사서 정독할 생각이다.

3. 배우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 많은 카메오가 필요했나 라는 의문을 가졌다. 두번 볼 때는 관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민 배우가 맡은 범인은 그 이야기가 서래와 해준의 이야기와도 통하고 서래의 선택을 미리 보여주는 거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헤어질 결심은 참 친절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 물론 관객이 적극적으로 찾아가면서 봐야 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찾을수록 보이는 게 많은 영화다. 박해일 배우는 이런 얼굴과 대사를 했었나 싶을만큼 인상적이었다. 탕웨이의 순간 순간 튀어오르는 금방 또 몰입하는 연기도 좋았다.
이 영화에서 결심하고 행동하는 건 여성이라는 점도 좋았다. 서래도, 정안도 다 본인의 의지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니까. 두번째 보니 이정현 배우의 연기가 참 적절했다는 게 와 닿았다. 조연들도 다 좋았지만 놀랐던 건 2부에서 두번째 남편을 죽인 배우의 연기는 짧은데도 순식간에 몰입돼서 인상적이었다.

주절주절 말이 길었다. 놓치기 아쉬운 영화니 꼭 사운드 좋은 극장에서 관람하셨으면, 첫 시작부터 귀를 잡아끌며, 다양한 소리가 좋은 영화다.
기회 되면 두 번 보면 더 좋은 영화고, 아마 박찬욱 감독 영화 중에서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때마다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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