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빛시인의 집

2010 이적 그대랑 서울 공연 (2010.11.14) 본문

공연

2010 이적 그대랑 서울 공연 (2010.11.14)

솔빛시인 2010. 11. 16. 16:30

1.
시작은 좋지 않았다.
다음 날 나가야 할 방송 영상을 확인해야 했고
배경음악을 찾는다고 방 안에 있는 CD를 다 뒤졌다.
상황이 정리 된 것은 오후 3시.
혼자 보는 공연이라, 심심할까봐
CSI 라스베가스 11 시즌 새로운 에피를 다운 받아
아이폰에 넣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혹시 공연에 늦을까봐 걱정돼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카푸치노 한 잔 사서 걸으니 어느새 연대 공연장 앞.
6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다.

차가운 바람은 옷깃을 집요하리만치 파고드는데,
두둥~공연장 입장은 6시 반 부터 가능하다는 소식.
양복입은 건장한 아저씨 둘이 가로막고 서 있었고, 
주변에 들어갈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는 주변에 학생회관이 있을 거라고 했고,
말 그대로 문이 열려있어 찾아가 몸을 좀 녹이고 나왔다.

2.
양쪽에 줄을 서서 한 10분쯤 기다리다가 공연장 입장.
다섯번째 줄이라 기대했지만 무대와 가까웠다.
무대가 좀 높아 한 10번째 줄 중앙에서 보면 무대를 한 눈에 볼 수 있겠지만 이것도 어디인가.
아이컨텍도 가능할 자리였다.
오른쪽에 치우쳐 있어도 막이 가리워져 있지만
그쪽에 악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어서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얇은 막에는 이번 투어의 제목인
'2010 이적 그대랑'

하지만 한 편, 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다.
적군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대학교 가서 커서 좋아하게 된 뮤지션과는 달리
10년이 넘는 팬이었고, 그의 음악과 라디오를 들으며 어른을 꿈꿨기에
무대를 코앞에 두고서도 그가 나올까,  정말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걸까...

공연을 기다리며 트위터를 하다보니 트친 분 중에도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있어 트위터로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7시 10분쯤 됐을까. 불이 꺼지며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은 '두통'
의외의 선곡이었지만 적군은 등장하자마자 익숙하게 다양한 표정과 몸짓과 노래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그의 에너지 덕분에 이어진 '아무도'에서는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패닉의 데뷔곡 '아무도'
1995년 가을쯤, 연예가 중계에서 패닉을 처음 봤다.
머리가 삐쭉 빼쭉한 남자 한 명과 키가 껑충 크고 입이 큰 남자 한 명.  
듀엣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온 노래. '아무도'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다.
이 노래가 어떤 위력을 갖고 있었는지.

동그란 무늬가 있는 스키니진 샤이니 바지 입고
(적군이 이건 우리끼리만 샤이니 바지라고 하자고 했는데...;; 죄송해요 적군)
앞에서 뛰는 적군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노래가 끝나고 카니발, GMF는 있었지만 단독공연은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한 적군.
이야기를 하는데도 한참 서 있는 관객들을 보며, 앉아도 된다고.
아마도 벌써 부터 이렇게 뛰면 나중에 어떡하나 싶은 분들 계실거라고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앉아서 지루해질만하면 뛸 수 있는 그렇게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 건 나 뿐만이었을까.
내일 출근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이제 피아노 자리로 가겠다며.
무대 왼쪽에 위치한 피아노로 자리를 옮긴 적군.
이어진 곡은 '사랑은 어디로' 였다.
주변의 반응만 봐도 팬들이 참 좋아하는 곡이라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열심히 뛰고 놀던 사람들도 적군의 목소리에 빠져
집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툼'
'얼마나 많은 다툼 뒤에~~'
첫 소절에 함성과 탄식이 터졌다.  
앨범에서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도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스무살 때 부터 만나왔던 오빠와의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니 행복할 뿐.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
이 노래와 함께 무대 뒤에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물빛, 금붕어 등의 이미지가 편집된 영상이 흘러나왔고.
난 어느 새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패닉 3집이 나왔을 때, 점심 시간 때마다  소형 카세트에 넣고 들고 다니며 듣곤 했다.
봄을 지나 여름 그 시절, 귀에 달고 살았던 노래.
꼭 내가 17살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적군은 감사하다며, (공연 내내 공연이 끝난 것도 아닌데,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가며 감사를 표현했다.)
언제 자기가 '다툼'을 부르며 악~하는 함성을 들어보겠냐며...      
노래는 다 팔자가 있는 거 같다며. 만들 때는 몰랐는데,
발표하고 나면 그 후엔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자기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면 반갑다고 했었다.
최근에도 그랬고. ('하늘을 달리다'를 말하는 듯!)

그리고 이 곡도 자기가 작사하고 률이 작곡 했을 때,
(다시 부연설명. 작곡이 먼저라며.. 작사를 먼저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라고)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이어진 곡은 '거위의 꿈'카니발 앨범이 나왔을 때,
작은 시골학교에 정말로 이 앨범을 갖고 있던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테잎을 몇 번 빌려 주기도 했었는데.
그때 한 친구가 '이 노래가 제일 좋네' 라고 말했었다.
바로 그 노래가 '거위의 꿈'
그때 난 개인적인 일로 참 힘들 때 였고 그 노래를 들으며 정말 많이 울었다.
이 노래를 라이브로 처음 듣는 건 아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일까.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 다음 곡에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어느날 밤 이상한 소리에 창을 열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달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그들이 돌아왔다.."고>

한 때, 이 내레이션을 다 외울 정도로 패닉 2집을 하루 종일 듣고 산 적이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 우리 줄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다..;)
뛰어 올라, 정말 미친듯이 뛰며 소리쳤다.
작년 GMF 때도 이 노래 들으며 뛰다가 그 다음날 몸살 걸릴 정도 였는데... 그만큼 좋아하는 곡.

공연 초반에 적군이 공연 매진이 됐고 특히 막공 (이틀 공연이지만..)에 오신 분들이라면 기대하는 것들이 있을텐데.. 라고 했었는데.
역시 대단한 팬들. 앞쪽 팬들 뿐만 아니라 2층에 있는 팬들까지 열광적이었다.

작곡을 할 때, 피아노로 작곡한 곡도 있고 기타로 작곡한 곡도 있다며,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긴 적군.

그가 기타 연주한 곳은 바로 내 자리 정면.
시선은 비켜 있더라도 연주하는 손가락 하나 하나가 보일만큼 좋은 자리였다.
적군의 기타연주와 함께한 노래는 '강'과 '기다리다' 

이 두 곡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겠지만, 발표한지 10년이 지났어도 정말 좋아하는 노래이다.  
기타를 치는 적군을 보고 기타치는 남자에게 환상을 가졌을 정도였다.

전에도 많이 듣고 보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라이브로 들으니...
할 말을 잃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노래가 끝나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노래는 팔자라는게 있다며,
'다행이다'에 얽힌 에피소드 한 가지를 얘기했다.
'꽃보다 남자'촬영 할 때 김현중이 원래 없던 장면이었는데 기타 연주를 추가해야 돼서 준비되지 않았는데
기타로 칠 수 있는 곡 뭐냐고 해서'기다리다'라고 해서 불렀다고.
 방송은 10분 나갔지만 그때 한참 이슈가 됐었다며
그래서 김현중 매니저가 적군 매니저에게 '기다리다'를 싱글로 발매하면 어떨까 얘기를 했는데,
적군은 그때 거위의 꿈도 인순이 선배의 노래가 됐을 때라,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노래라며 튕겼는데 없던 얘기가 됐고.
현중군은 한류스타가 됐다며... 후회한다고.
혹시라도 현중군 아는 사람이 여기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음껏 갖다 쓰라고 얘기를 전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김현중만 한류 스타인가, 적군도 우리들의 스타인데.
적군은 자기가 귀여운 면도 있다며..
제스츄어도 취하며 피아노 자리에 앉았다.  (팬들 -악~~(놀라는 소리 반, 귀엽다는 소리 반)

그리고 이어진 (적군의 표현으로) 귀여운 노래 3인방!!
'뿔' '보조개' '그녀를 잡아요'
적군 말대로 이번엔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로 이어지는 선곡을 많이 했다.
자신도 공연 준비하면서 그 동안 발표한 노래를 쭉 들어보니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가 꽤 있다며, 그것은 다 자신에게서 나온 노래니,
그게 어디 갈 수가 없다며, 물론 노래가 다 똑같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적군의 귀여운 노래들을 난 참 좋아한다.
'비틀즈'스타일의 통통 튀면서도 재치있는 가사와 노래.

'뿔'의 피아노 연주는 앨범 버전과 달리 더 통통 튀고 두 옥타브를 더 연주하기도 하고
코러스와 함께 부른 '그 모자 한 번 어울리네'도 재밌었다.
적군도 설명했지만 '뿔'은 JP의 뿔에 관한 노래.
정말 뿔인가 싶었는데, 만져보니 정말 뿔이 하나 있었다며,
지금도 그렇다고. 오늘 공연 보러 왔을거라고.

'보조개'는 누구의 보조개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이때 뭔가 예감한 듯한 팬들의 ('하지마' 라는 대신) 아악~~ 함성소리)
자신의 보조개라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보조개가 있는 멋진 누군가가 서 있었는데 그게 자기였다며.
적군은 바로 민망해했지만 누가 그를 유부남이라고 할 것인가.
진정 귀여웠다.

'그녀를 잡아요'를 부를 때는 무대 뒤 영상에서
글자 판이 돌아가며 가사가 나와 재미있게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률, JP 동욱님까지 나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카니발 공연 때 네 사람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 세 노래를 귀여운 노래 3인방이라고 하니,
피아노 자리 앞에서 팬 한 분이 외쳤다'
적이네 집'
맞다. 이 3인방보다 더 귀여운 노래가 있었던 것이다.

적군은 당황한 듯 웃으며. 그럼 어디 한 번... 하며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적이네 집'이 흘러나왔다.

아..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다니.
적군이 96년도 부터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할 때 했던 코너.
2분 동안 적군은 적이, 적이 엄마, 작이 (적이 여자친구)
적이 동생 까지 1인 4역을 하며 콩트를 했었다.
그 때 시작을 알리는 주제곡이 바로 '적이네 집'
예전에 녹음 파일 30여개를 얻어서 요즘도 가끔 듣기 때문에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다 그 노래를 같이 부를 때 그 감동이란.
난 중학교 때 학교 마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길을 걸으며 '적이네 집'을 흥얼거리곤 했다.

적군도 놀라면서 다 기억하고 있었다고.
이거 테잎으로 녹음 한 분들 손 들어보라고 하며.
그거 다 뮤직팜으로 보내달라고 다 모아서 화형식을 할 거라고 말했다.
그때는 별난 것을 다했다고 말했지만 팬들에게는 즐거운 기억인데...^^
하지만 여기는 노래 신청 받아주는데가 아니라며 이렇게 노래 신청하시면 안된다고 했지만
이미 이 얘기는 이미 퍼지고 퍼졌으니,
아마도 투어 가는 곳마다 이 노래가 신청곡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이어진 곡은 '빨래'

이 곡이 싱글로 먼저 나왔을 때, 노래도 좋았지만 깊어진 적군 목소리에 감탄을 했었다.
하지만 공연 시작 부터 음향이 크게 만족스럽진 않았고,(전문 공연장이 아니니...)
그리고 적군 컨디션도 최상은 아니었다.
'빨래'를 부를 때도 처음엔 박자가 잘 안 맞는듯
피아노도 조금 씩 엇나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역시 노련하게 자리를 잡는 적군.

그리고 이어서 블루스 스타일로 편곡한 rain이 이어졌다.

노래가 끝나고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지만 '빨래'라는 곡을 쓰게 된 얘기.
루시드 폴과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이제 뭐할 거니 물어보니
'빨래나 해야겠어요. 저녁엔 비가 온다는데'라는 얘기를 듣고 옳거니.
이것을 가사로 쓰겠다고 하니 폴이 '뭘 써요?'라고 했지만
그날 술로 저작권료를 해결하고 그래서 '빨래'란 곡이 나오게 됐다며.
하지만 그것도 루시드 폴이 얘기했으니,
(이거 얘기하며 폴 성대모사를 하는데 비슷했다.ㅎㅎ)
가사로 나왔지 재형님처럼 아~ 나 빨래 빨래 빨래 해야돼. 이러면 가사로 안 나왔을 거라고. ㅎㅎ
(이때만 해도 아 내일 놀러와 봐야지했는데.. 아시안게임 때문에 결방.ㅠ)

rain은 들어보신 분도 있겠지만 편곡을 해보았다며,
이 노래가 사실 발표했을 때는 인기를 못 얻었다고.
그때 전국적으로 수해가 나서, 비가 이렇게 오는데 rain이란 노래를 라디오에서 틀 수 없었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 비만 오면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사실 제목이 '장마'였는데...라고 하며.
사람들이 웃으니, rain이 적응돼서 그럴거라며 '장마'도 괜찮은데 라고 얘기하니 사람들은 아니라는 반응.
그러니 적군은 '장마'라고 하니 '빨래'하고는 어울린다며. (^^)

이제는 일어나 다시 달릴 차례.
'롤러코스터'
중간에 밴드 소개가 있었다.
기타 치는 분들은 처음 보는 분들이었는데, 에너지가 넘치는 연주를 들려줬고,
길호님, 은찬님, 정래님, 남메아리 등등은 률 공연에서도 봐서 익숙한 분들.
코러스 세 분도 공연 내내 재미있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멋있는 공연을 만들어 주었다.

이어진 곡은 '짝사랑'
아 이 노래 할 때 적군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적군도 GiGs 활동을 하면서 라이브 실력이 늘었듯이,
긱스 노래를 부를 때는 꼭 어린아이 마냥 무대 위를 휘젖는 모습이 보는 사람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리고 이 노래는 또 쥐었다 폈다 하는 매력이 있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노래.

'하늘을 달리다'
이 노래 할 때 'UFO' 부를 때 만큼 내내 부르고 뛰었다. 
뛰는게 전혀 힘들지 않을만큼 신이 났었다.
꼭 하늘을 달리는 것처럼
중간에 멋있는 기타 솔로와 마지막 후렴 부분에 천이 내려와 빨간색으로 물들고 떨어지는 장면도 인상적이 었다.

노래가 끝나고 적군과 관객은 서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고
나도 숨을 고르며 힘껏 박수를 쳤다.
밴드 연주 엠프 소리보다 함성소리가 더 컸다며 대강당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이제 공연이 막바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
사람들의 아쉬움에  조금 더 몇 곡 더 있다며... (앵콜이 있다는 얘기!^^) 아쉬움을 달래고

그리고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이 노래는 꼭 같이 부르고 싶다며.
'달팽이'로 이어졌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로 패닉을 알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었다. 서서 따라 부르는데,
모든 관객이 한 마음이 되어 '갈래~'를 같이 합창할 때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바다를 건널거야~'라고 적군이 외칠 때
바다의 등대처럼 모든 조명이 무대부터 객석을 환히 비출 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열여섯살 중학생이 된 기분.

다음 노래는 적군이 여러분을 위해 만든 곡이라며.
적군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다행이다'를 불렀다.

이때 카메라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분들이 꽤 있었다.
그 전에도 종종 카메라가 보였다. 
같은 줄이 었다면, 주의를 주고 싶었지만 다행이 우리 줄에는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예의가 아닐텐데...
공연 내내 그 점은 참 아쉬웠다.
좋은 공연은 가수 혼자가 아니라 모든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곡은 '그대랑'
처음엔 피아노를 치길래 설마 앉아서?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곧바로 무대로 나와 같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랑 함께 갈래요 꼭 끌어안고 갈래요
서로에게 서로라면 더 할 나위가 없어요

앨범을 들었을 때 이 노래는 라이브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적군은 노래의 가사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 노래는 또한 우리의 마음이기도 했다.

공연 내내 온 몸으로 노래를 불렀던 적군.
공연장을  한 눈에 보고, 다른 연주자들도 꼼꼼히 보길 좋아하는 나도
적군에게 시선이 꽂히면 뗄 수가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몸짓과 에너지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 나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노래로 이미 우리는 하나였다.

그리고 이어진 앵콜.
사실 프롬프터가 2층 객석 아래에 있어 1층 관객들은 뒤돌아 서면 가사와 다음 노래가 뭔지도 알 수 있었다.
난 자꾸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길래 뭔가 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난 일부러 보지 않았다.
다음 곡이 뭔지 미리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앵콜은 궁금했다.
하지만 거기엔 퇴장이라고만 써 있었고.

끊이지 않는 함성소리에 무대로 나온 밴드 멤버들.
그리고 의자와 기타가 중앙으로 옮겨졌다.
어떤 곡일까 싶었는데,
파란색 후드티를 입고 나온 적군은 '이상해'를 불렀다.
이 노래를 들으며 오빠와 같이 못 온 것이 처음으로 아쉬웠다.
앨범에서 처음 들었을 때도 오빠 생각을 많이 했었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기 때문에.
그리고 공연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에.. 또 울컥.

우리는 3박자에 맞춰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박수를 쳤다.
어느 누가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보통은 반주가 없고 조용하면 그칠 법도 한데.
쿵-에선 다리. 짝짝 - 박수.
노래가 끝이 나자 적군은 찡하다며.
쿵짝짝 박수에 감동받은 건 처음이라며 다음 부터는 모든 곡을 3박자로 쓰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앵콜 곡은 '왼손잡이'
예상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곡일 수 밖에 없는 노래.
관객들이 왼손잡이를 부를 때는 왼손을 내밀어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왼손잡이의 백미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건데 '라라라라'를 여러번 할 줄 알았는데,
정직하게 끝이 나서 아쉬웠다.
멤버들이 인사를 할 때까지도 설마 이게 끝이야 아쉬웠다.

하지만 이 공연은 전국 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였고 진정한 막공은 부산 공연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관객이 떠나는 무대를 찍고 돌아서야 했다.

3.

오늘 출근길에 4집 앨범을 듣는데 내내 코끝이 시큰거렸다.
하루 종일 후기를 쓴다고 해도 받은 감동의 1%도 안 되겠지만
매번 후기를 쓰지 않으면, 공연을 내 마음에서 정리할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난 처음부터 무대 위의 적군을 좋아했다.
2집에 나오기 전 이문세 쇼에 나와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난 패닉의 팬이 되었다.
98년. 처음으로 간 공연이 바로 패닉 3집 발매 공연이었다.
12년이 흘러, 지금도 그의 노래를 듣고 공연을 본다.

적군은 마지막에 여러분 덕분에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다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난 그에게 더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노래를 만들고 불러줘서 고맙다고.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 평생 '그대랑' 함께 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