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빛시인의 집

언니네 이발관 - 안녕 2010년의 시간들 (2010.12.31) 본문

공연

언니네 이발관 - 안녕 2010년의 시간들 (2010.12.31)

솔빛시인 2011. 1. 1. 13:30

20대 연말은 거의 언니네 이발관과 함께 했다.
가끔 다른 공연을 가고 싶었지만, 결국 선택은 언니네 이발관.

노래도 다 챙겨 듣고 싶었지만
일을 시작한 후로, 며칠 전부터 노래를 챙겨 듣고 설레여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어제도 갑자기 떨어진 일 때문에
7시가 넘어서야 사람들 눈치를 보며 겨우 회사를 나섰다.

오빠와 만나 밥을 먹고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줄을 서고, 입장하고.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며 공연을 기다렸다.

오빠도 요즘 허리가 아파 치료를 받고 있었고, 나도 연말에 바빠 컨디션이 안 좋아 뒷줄 중앙에 앉았다.
스탠딩 공연에서 앉아 보는 것음 처음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공연을 기다리며 오빠와의 대화  
'어떤 곡이 가장 듣고 싶어?'
'백년... '
'백년동안의 고백?'
'응'

9시 40분 쯤 시작된 공연.
그 곡이 셋 리스트에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바로 첫 곡일 줄이야.
원래 첫 곡이 아니었는데 능룡님의 반대를 이겨내고 선곡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조용하다 생각했는지 다음부터는 이렇게 시작 안 할 거 같다고 얘기한 석원님.
몰랐는데 이 공연은 올 초부터 대관을 하여 오래 준비한 공연이었다.
작년에 많은 공연을 했지만 그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공연이 이 곳에서 했던 공연이라고. 
그래서 대관을 일찌감치 하고 준비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여기서 공연할 때 마다 하는 얘기지만 이 곳이 길이가 길어 꼭 배 같지 않냐며.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자며.
영화 2012를 보고 좋아했던 이발사들은 영화 전문기자. (아마도 원희님?^^)에게
별로라고 욕을 들었다고 했지만.^^

나도 공연 중간 중간 눈을 감으면 이리저리 음악과 사람과 함께 흔들리는 느낌.
2010년 마지막에서 2011년으로 향하는 이발사들과 함께 하는 항해가 기분 좋았다.

공연 내내 계속됐던 톰과 제리처럼 공연 내내 석원님과 능룡님의 티격태격.
능룡님에게 인사를 맡겨 놓더니 마무리가 잘 안되니까 이래서 '놀러와'를 우리가 못 나가는 거라며.. 섭외도 들어
왔다고.
그리고 전 날도 능룡님은 양말에 포인트를 두었다며 어제는 마이클 잭슨 스타일이었으나 생각보다 티가 나지 않았고. 오늘은 12,300원 짜리 양말이라며. 원래는 이렇게 비쌀지 몰랐으나, 가격을 듣고 태연한척 카드를 내밀었다고 한다. (귀여운 능룡님^_^)
결국 사람들의 성화에 발을 들어보이며 예쁜 양말을 선보였다.

잠깐 엉켜버린 셋리스트 때문에 고민하는 듯 했으나,
다시 처음으로 가자며 좀 더 강하게 편곡한 '다음 곡은 뭐죠?'

언제나 들어도 가슴 아픈 '꿈의 팝송'
정말 다른 곡으로 느껴졌던 '울면서 달리기'

그리고 모두 다 들어가고 혼자 무대에 남겨진 능룡님.
자신의 입시 때 얘기를 하며 어문계열만 다 원서를 넣었는데, 그랬던 이유는 그러면 영어 하나는 배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영어는 열심히 해야 잘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You Belong to me를 부르기 시작했다.
영어 발음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작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 가슴이 따뜻해졌다.

역시나 다시 나온 석원님은 나름의 평을 하며, 능룡님이 자기를 처음 만날 때 비교해서 성장을 한 것이라며.
그러고보니 능룡님이 33살.
처음 봤을 때 능룡님도 20대 청년이었구나.. (지금도 멋지죠!)
언니네 이발관과 함께 한 시간이 꽤 오래 됐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이어진 석원님의 드림팀 소개.
아는 사람이 우리를 보고, 멤버들을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만 드림팀이라고 했다며. 석원님과 같이 여자를 좀(?) 안다는 세렝게티의 리더 정균님. 싱어송라이터 건반의 요정 주연님.

언제나 그렇듯 뒤를 받쳐주는 묵묵히 연주하는 정균님과
언제 봐도 아름다우며, 공연의 재미를 북돋는 주연님의 건반 연주.
새해에도 우리 이발사들과 함께 하는 모습 자주 볼 수 있길 바라며~

 '그대 내품에'
공식홈페이지에 10일 정도 공지했던 공식 떼창곡.
석원님은 원래 이노래를 아냐며 대답을 했을 때 신기하게 생각했으나.
중3때 유재하 추모 앨범을 처음 듣고 유재하에 빠져 한동안 듣고 지냈고 그 앨범에서 '그대 내품에'는 
원주님이 불렀다.
목소리와 노래가 정말 잘 맞아서 원주님 팬까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석원님은 재하님 얘기를 하면서 뭔가 더 말할 듯 했으나 사람들의 바람에도 더 말하지 못하고
원래 노래 이미지와 부른 사람은 다르기 마련이라며 여자를 좋아하신 분이라는 얘기만 남겼다.
더 얘기하고 싶어했지만 얘기를 못 한 듯.

노래가 시작하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같이 부르지 못해 아쉬웠다.

특히 어둠이 찾아들어
마음가득 기댈 곳이 필요할 때

이 부분을 부를 때는 내가 앞에 나가서 큰 목소리로 부르고 싶었지만.. (뒤에서 부르니 들리지 않아...;)

그래도 석원님의 목소리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끝없는 이야기'
노래를 만들고 나서 객원 보컬을 쓰고 싶었으나 막상 만들고 들어보니 웬지 기운 없는 목소리가 필요할 거 같았다며 직접 불렀다. LIFE 앨범에 있는 끝없는 이야기를 불렀다.
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주연님과 함께 해서 더욱 좋았던 노래.
오빠도 노래가 좋았는지 어느 앨범에 있냐며 궁금해 했다. 나중에 앨범을 들려주기로 했다.  

5집 노래들이 이어지고, 마지막 곡이라고 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벌써 마지막이라니,
석원님은 어느 곳에서 카운트 다운을 공지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는 듯 했지만
입장할 때 나눠준 축포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분위기로는 밤이라도 샐 기세였다.
앵콜이 꽤 길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건 사실. 언니네 이발관은 어두운 노래만 있어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르 맞이하는 날이기에 밝은 노래를 골랐다며 'I will'을 불렀다.
 이 노래 부르기 전 능룡님이 지금 저에게만 보이는 곳에 노래 제목이 보이는데 게임기가 생각이 난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노래가 시작하고 스위스 개그 같아 한참 웃었다.

그리고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이어진 앵콜.
바람이 부는대로를 시작으로 태양없이, 인생은 금물까지 열심히 달렸다.
같이 뛰지 못해도 맨뒤에 앉아서 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나도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발을 열심히 굴렀다.

그리고 무대 뒤로 사라진 석원님.
그 사이, 능룡님이 원래는 이 곡으로 하려고 했는데 모니터 결과 다들 말려서 아까 밥딜런 노래를 했다며,
원래 하려던 곡을 조금 불러주었고, 그 사이에 석원님은 41이 쓰여진 티셔츠를 입었다.

2010년의 시간들.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2002년 언니네 이발관 공연이 생각난다.
거의 매년 해마다 이 노래를 들었으니, 벌써 9년째.
내년에도 이 곡과 한 해를 마감할 수 있길.
 
노래가 끝나고 10분 정도 남은 새해.
무대에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했다. 석원님은 자기가 유재석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황하면서 얘기를 이어갔고.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기도 했다.
능룡님이 나이 먹어가는 걸 아쉬워하지 말라는데 석원님 뭐가 아쉽냐며 이 사람들 좋아서 이거 하는거라고.
자기는 마흔 하나라며...^^
정균님과 자기는 여자를 좀 아는데, 대정님은 예전에 살 빠졌을 때 잘 나갔었다며
대정님은 슬프게 고개 끄덕이고.. 능룡님에게는 넌 전성기가 언제였냐며 한 소리.^^
서로의 나이를 얘기하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고 감회를 나누었다.

어느 덧. 10초가 남은 새해.
사람들은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고.
00:00
이 되는 순간, 입장할 때 나눠주었던 축포를 쏘았다.

공연장에서 새해를 맞이한 건 2003년 이승환 박정현 맞장 콘서트 이후 처음.
그리고 새해 첫 곡은 '순간을 믿어요'
이발사와 함께 새해를 맞다는. 더불어 같이 한 오빠도 고맙고.
노래 시작하기 전 키스하려던 커플이 쑥쓰러워하니 석원님이 해도 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
나중에 들으니, 오빠도 손이라도 잡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무서워서 시도도 못했다고 한다..;;

석원님은 커플 얘기에 이어, 언니네 공연은 남자팬들이 많지만 (점점 남자팬들이 많아지는 듯)
조윤석 공연 가면 아휴~ 하며. 장난 아니라고.
자기도 노래 좋아하지만 공연 때 졸기 일쑤라며.
예전에 대학로에서 했던 공연에서 공연 보다가 나와 잡담하다가 걸린 얘기를 하기도 했다.^^

깊은 한숨에 이어진 곡은 80년대 유행했던 곡이라며. 주연님은 김흥국 곡 같다고 했는데,
자신이 좋아서 골랐다고 Karma Chameleon 을 불렀다.
이 곡은 장혁님의 라이브로 몇 번 들었고 음악여행 라라라에서도 불렀기에 익숙한 곡이었다.
가사는 잘 모르지만 새해를 시작하기에 딱 맞는 신나는 곡. 

그리고 '나를 잊었나요?'
우리의 항해가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언제봐도 반가운 석원님의 춤사위(?)는 좋았지만.
2002년 공연 때 봤더 문워크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리고 난 '어제만난 슈팅스타'를 기대했지만.
공연의 마지막 곡은 '아름다운 것'
처음부터 끝까지 합께 부르며 눈물이 핑 돌았다.
2011년 시작을 이 곡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한편,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쉬워 짠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석원님은 언니네 이발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나도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내 20대의 일부인 언니네 이발관.
이제는 김창완 밴드를 제외하고는 모든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설 수 있는 그들.
그들은 우리 덕분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있어 내가 조금은 잘 살 수 있었다며.

오빠의 말대로 공연 시작 전 춥고 오래 기다리고 해도
나중엔 따라 부를 수 밖에 없는 공연.

다음엔 체력관리 제대로 해서 열심히 뛰고 즐겨야겠다.

어제는 잠들고 싶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그 시간이 꿈처럼 흘러가 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원하지 않아도 점점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기억의 조각들.
하지만 공연 때 모든 순간을 전할 수 없어도,
그 순간은 내 마음 속에 고이 남아 있다.

눈을 뜨니 서른의 첫 날이 밝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30대에도 이발사들의 음악과 공연으로 함께 하길.
이발사들과 언제 봐도 반가운 언니들과 반갑게 인사 나눈 사람들과
내 옆에 함께 노래 불러 준 동반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