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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빛시인 2023. 3. 10. 21:34


는 없어야 한다.


그런 영화가 있다. 영화적인 성취는 뒤로 하고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이 전면에 드러나는 영화. 이 영화가 그렇다.

예상했고 모르던 내용도 아니라 피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 이거라도 하자.

춤추는 소희로 시작해, 춤추며 밝게 웃는 소희로 끝나서 좋았다.
엔딩은 예상했었다. 못하던 걸 해내는 걸로 끝난다는 것도.
누구 하나 죽음을 책임지지 않고, 심지어 소희를 깎아내렸으나 그는 밝고 춤 추는 걸 좋아하고 불의를 못 참고 다만 자신이 일한 몫을 당당히 받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영화를 보며 내가 알고 알았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중학교 친구들 반 이상은 실업계인 옆 학교로 진학해 실습을 나갔다.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20년도 훨씬 지나서 짐작만 겨우 해본다.

작가로 일하며, 공중파 방송을 하던 여러 프로덕션을 전전하고 마지막 커리어 3년 반은 기업 사내 방송에서 일했지만 한 번을 제외하고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다. 소희의 일이 꼭 실업계 친구들이라서,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라는 거다. 공부를 안 했다는 게 무슨 상관인가. 단순하다. 일하는 사람은 안전하게 일한 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 그게 실습생이라서 그만둘까봐 라는 핑계는 말이 안된다.

관리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얼마든지 저임금과 중노동,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고 실습생 안전을 위한 법도 필요하다 (아직 계류중이다.. 14건 정도의 법안이.)

가끔 내가 일하던 곳을 도망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죄책감이 든다. 지금 방송작가도 일부 노동조합이 생기고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일하다가 돌아가셨다, 실습생이 안타깝게 떠났다 라는 얘기를 들으면 이런 세상에서 애를 낳으라고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지만 누구에게 얘기할 것인가.

세상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일은,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음 소희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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